[ 신들의 장난, 인간의 비극: 오디세우스의 20년 ]
-누군가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기원전 1194년부터 1184년까지 지금의 튀르키예 차나칼레에서 벌어졌던 트로이 전쟁은 신화에서 역사가 된, 서양사에서 손꼽히는 거대한 사건이다.
트로이의 둘째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와 눈이 맞아 트로이로 도주하자, 메넬라오스는 자신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마침 에게해를 중심으로 해상권과 무역을 장악하고 싶었던 아가멤논은 이를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는 과거 오디세우스의 제안에 따라 헬레네의 구혼자들이 맺었던 맹약—"그녀의 결혼 생활에 위기가 생기면 모두가 나서서 돕겠다"—을 발동하여 그리스 연합군을 소집했고, 이로써 10년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군은 공성전과 백병전을 거듭하며 아킬레우스, 대(大)아이아스, 헥토르 등 수많은 영웅의 서사를 써 내려갔다. 하지만 결국 신들의 개입으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같은 불멸의 영웅들이 차례로 전사하며 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이때 '지략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목마'라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내놓았고, 철옹성 같던 트로이는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다. 아이네아스를 비롯한 일부 생존자만이 성을 빠져나와 긴 유랑 끝에 이탈리아반도에 정착해 훗날 로마의 시조가 되었을 뿐이다.
겉보기에 트로이 전쟁은 파리스와 헬레네의 철없는 사랑놀음이 불러온 화근 같지만, 그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 사과 한 알, 그리고 그 사과에 새겨진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였다.
여신들의 허영심에서 비롯된 이 작은 불씨가 10년 동안 수많은 영웅과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비극은 전쟁의 종결로 끝나지 않았다.
방물장수로 변장을 해서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키고 목마 작전으로 승리를 이끌었던 일등 공신 오디세우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전 제사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노엽게 한 대가로 그는 다시 10년을 바다 위에서 떠돌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모든 부하와 배를 잃고, 그는 결국 누더기만 걸친 처참한 몰골로 고향 이타케에 발을 내딛는다.
20년 만에 돌아온 왕국은 변해 있었다. 땅은 여전히 비옥했으나,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믿는 무례한 구혼자들이 왕궁을 점령한 채 매일 잔치를 벌이며 국고를 탕진하고 있었다. 왕비 페넬로페는 낮에 짠 천을 밤에 풀며 시간을 벌고 있었고, 갓난아기였던 아들 텔레마코스는 장성했으나 무력하게 그 수치를 지켜볼 뿐이었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왕궁에 잠입한다. 그는 열두 개의 도끼 구멍을 화살로 꿰뚫는 시험을 통과한 뒤, 구혼자들과 변절한 하인들을 처단하는 피의 복수를 감행한다. 그리고 오직 부부만이 아는 '올리브 나무 침대'의 비밀을 말함으로써 비로소 페넬로페의 의심을 거두고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만약 테티스의 잔치에 에리스가 초대받았더라면? 파리스가 갓난아기 때 죽임을 당했더라면? 혹은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만약'을 던져보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을지 모른다. 올림포스 꼭대기에서 인간의 운명을 장난감처럼 휘두르는 신들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각자에게 지워진 숙명의 굴레를 쓰고 예정된 비극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 불과했을 테니까.
우리는 정말 연못 속의 개구리에 불과한 것일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재미 삼아 던진 돌맹이 하나를 피하기 위해, 이 좁은 생의 연못을 처절하게 뛰어다니는 서글픈 존재일까. 전쟁에서 이기고도 20년을 방황해야 했던 오디세우스처럼, 우리 역시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나 타인의 욕망이라는 '나비효과'에 휘말려 끊임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이 자꾸 무기력해지고 일상이 귀찮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 영혼이 이미 이 거대한 운명의 장난을 눈치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디세우스가 결국 누더기를 걸치고서라도 자기 집 문턱을 넘었듯, 우리도 우리만의 '이타케'를 향해 묵묵히 노를 저어야 하는 것이 개구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존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