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방앗간 믿고 오시는 거잖아요.”
1990년대 농촌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를 기억하는가? 이 드라마는 농촌 마을의 중심이었던 방앗간과 그곳을 지키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특히 초기 시즌은 김포 고촌읍 신곡리 일대에서 촬영되며 김포와 인연을 맺었다.
드라마의 중요 장소로 등장한 방앗간은 잔치나 명절에 떡을 만드는 곳으로, 그 시절 우리 사회의 공동체를 상징한다. 드라마는 종영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공동체 장소는 변했지만, 김포시민의 순박함은 그때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여러분을 인도하겠다. 바로, 운양동 반다비체육센터다.
오전 8시 45분, 반다비체육센터 입구. 직원은 보이지 않았고 줄은 길어졌다. 9시 자유수영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시계를 번갈아 보며 서 있었다. 57분이 되어서야 직원이 나타났고, 9시 정각이 되어서야 입장이 시작됐다. “정시 운영”이라는 원칙은 지켜졌지만, “이용자 시간”은 고려되지 않았다.
“아래 번호로 줘요.”
나보다 먼저 온 한 할머니가 데스크 직원에게 건넨 말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의아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목욕탕처럼 번호 키를 받았다. 그런데 담보로 물건 하나를 맡겨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키 반납을 강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개인 물건까지 맡겨야 하는 상황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압권은 ‘안전서약서’였다. 성명과 생년월일을 적어내는 종이 뭉치는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었다. “지병이 있는 어르신이 쓰러진 이후부터 받는다”는 직원의 설명은 궁색하게 들렸다. 허위로 작성해도 알 길 없는 이 서약서가 과연 실질적인 사고 방지책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실질적 장치라기보다, 행정적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처럼 보였다. 안전은 시스템으로 확보해야지, 서명으로 전가할 수 없다.
내가 받은 락커 키는 78번. 번호 키 하나로 신발 보관과 탈의실 락커를 함께 사용하는 구조였다. 탈의실에 입장하자마자 나는 왜 앞선 할머니가 ‘아래 번호’를 요청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다닥다닥 붙은 작은 락커들이 위로 3단 쌓여 있었다. 키가 큰 사용자조차 이용하기 불편했고 평상 하나 없는 공간에서 시민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러니 키가 작고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아래 번호’가 절실했을 것이다.
샤워실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16개의 샤워기 앞에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수업을 마친 사람과 수업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뒤섞이며 복잡한 상황이 펼쳐졌다. 빈 샤워기를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서야만 했다. 줄 끝으로 가려는데 수업을 마치고 들어오던 한 여성이, 나를 보고 놀라며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샤워실과 수영장 사이에는 벽 대신 바람에 나부끼는 파란색 고무가 경계처럼 걸려 있었다. 중국집 문에서나 볼 수 있는 두꺼운 발이었다. 그 사이로 수영장에서 알몸이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동선 설계 하나가 이용자의 존엄과 체험을 동시에 흔들고 있었다.
“순전히 자기들 일하기 편한 구조예요.”
“10시 마지막 이용은 가관도 아니에요. 50분 수업이 끝나는데 체육센터 문 닫는 시간이 10시라 직원들이 빨리 나오라고 난리예요. 샤워도 제대로 못 하고 옷도 대충 입고 나가야 해요.”
알몸으로 선 채, 옆에 서 있던 여성 시민들의 말이다. 내가 예민한 것일까 생각했던 불편함을 다른 시민들도 느끼고 있었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또 다른 시민이 말했다. “민원 넣어도 달라진 게 없어요.” 속상해하는 눈치다. 현장의 불편은 이미 공유되고 있었고, 개선은 멈춰 있었다.
9시 15분. 내가 힘겹게 수영장에 입장한 시간이다. 어떤 시민은 9시 20분에야 입장했다. 입장 후 별도의 준비운동 시간은 없었고, 시민들은 각자 알아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준비운동 사진 벽보도 없었기에, 나 역시 쭈삣쭈삣 물 속으로 들어갔다.
정해진 스케쥴이 있었기에, 10시에 수영장을 나서야만 했다. 즉, 1시간 이용권이지만 실제 수영 시간은 30분 남짓이다. 시간은 동일하게 결제되지만 경험은 균등하지 않았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니 또 다른 불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샤워를 끝내고 수영복을 탈수하려면 다시 수영장 방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탈수기가 퇴장 동선이 아니라 반대 방향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탈수기는 필요 이상으로 큰 기계 하나뿐이다.
여러 불편이 겹치자 나는 퇴장하면서 데스크 직원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직원은 “출근 시간이 9시에요. 그리고 오전 자유수영 시간이 9시부터 11시 50분까지 길기 때문에 다음 타임을 이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50분 수업 뒤 10분 휴식이라는 구조에서 한 타임만 이용하려는 시민에게는 아무런 배려가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직원은 이런 문의가 익숙한 듯 보였다. 결국 답변은 “김포시에 문의해 달라”는 말로 끝났다.
그 말은 결국 이 시스템이 시민의 편의보다 운영의 편리함에 맞춰 설계됐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근무 시간을 왜 탄력적으로 시행하지 않을까. 이런 구조가 과연 당연한 것일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최근에 남양주시에서 이사 온 김포 초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 도시의 체육시설을 비교하게 된다. 남양주 체육문화센터는 같은 공공시설이지만 구조가 다르다. 결제 후 번호가 적힌 종이를 받아 해당 번호의 신발장으로 이동한다. 신발장에 붙어 있는 키를 빼 신발을 넣고, 그 키를 락커 키로 사용한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다시 그 키로 신발장을 열어 신발을 꺼내게 된다. 신발을 찾고 키를 꽂으면 더 이상 빠지지 않고 그대로 신발장에 남는다. 그래서 데스크에 반납할 키도 없고, 키 반납을 강제하기 위해 개인 물건을 맡길 필요도 없다.
샤워실 구조도 다르다. 16개의 샤워기가 전부인 반다비체육센터와 달리, 남양주체육문화센터는 그 두 배가 넘는 30개 이상의 샤워기를 갖추고 있다. 이용 가능 인원도 두 배로 많기에, 샤워기 개수가 핵심이 아니다. 남양주는 사우나와 소형 온탕을 배치해 이용자들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분산시켰다. 덕분에 수업을 마친 사람과 새로 입장하는 사람이 뒤엉키지 않으며, 알몸이 외부로 노출될 염려도 없다. 탈수기 역시 퇴장 동선에 맞게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다. 결국 문제는 샤워기의 숫자가 아니라, 이용자의 흐름을 어떻게 설계했느냐에 있었다.
가격도 역설적이다. 남양주가 더 저렴하다. 남양주 체육문화센터는 평일 성인 3600원(할인 1800원), 공휴일 4600원(할인 2300원)이다. 반다비체육센터는 성인 5500원(할인 2750원)이다. 지자체 할인 종류와 할인율은 동일하지만, 시스템은 단순하다.
여기에 남양주시는 시민안전보험을 운영한다. 별도 신청 없이 모든 시민이 자동 가입되며 보험료는 시가 전액 부담한다. 그러니 체육시설에서 종이 서약서를 받을 필요도 없다. 안전을 개인의 서명이 아니라 공적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김포시에도 물론 김포시민안전보험이 존재한다. 김포시에 주민등록을 둔 시민(등록외국인 포함)이라면 별도 신청 없이 자동으로 가입되며, 상해의료비나 자전거 사고 상해 진단금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왜 체육시설 현장에서 체감되는 안전 시스템은 이토록 다를까.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시스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운영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김포 반다비체육센터는 2025년 개관한 민간위탁 운영시설이다. 민간위탁이란 지자체가 직접 해야 할 공공 업무를 민간에 대신 맡겨 운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전문성과 효율성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책임 회피’와 ‘비효율’ ‘직원 편의 중심’의 구조처럼 느껴졌다.
반면, 남양주체육문화센터는 도시공사가 직접 운영하며 민원과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민간 위탁 비용을 직접 운영에 투입해 그 혜택이 시민에게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운영 철학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드러난다. 이용자를 배려해 샤워실 비누조차 늘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 것과 같은 세심함이 그 증거다.
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후보자들은 ‘스마트 행정’과 ‘AI 혁신’을 외치지만, 정작 우리가 경험하는 체육센터의 불편함은 AI 혁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샤워실 동선 하나, 종이 서약서 하나, 키 배분 구조가 그것을 말하고있다.
처음부터 잘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반다비 체육센터를 보며 문득 김포골드라인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여유 있게 설계했더라면, 지금의 불편은 없었을 텐데. 이쯤 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편한 방식이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도 김포시를 믿고 오는 거잖아요. 그런데 다들 불편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오는 것 같아요.”
반다비체육센터를 나오면서, 문득 샤워실에서 들었던 한 시민의 말이 떠올랐다. 이런, 불편을 말하지 않는 김포 시민은 참으로 순박하구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속 마을 사람들처럼.
이 글은 김포를 흠집 내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김포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라.
“우리도 김포시를 믿고 오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