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나무순 나올 때 되지 않았어?"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 아들 녀석이 뜬금없이 전화를 해서는 엄나무순 나물에 밥을 비벼 먹고 싶다고 투정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 생각하면서 엄마랑 같이 뒷산에서 먹을 만큼은 따다가 삶아 놨으니 편한 시간에 다녀가라."고 했더니, 팀장이 되어 지점을 맡고 보니 일반 직원 때와는 다르게 사람 부리는 게 어렵다는 둥 일상의 어려움과 하소연을 한 보따리 쏟아놓습니다.
많지 않은 나이에 욕심을 내서 지점장에 도전하고 그 어려운 걸 성취해 냈을 때는 대견하고 뿌듯했는데, 삶의 고단함이 더해지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하고 시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뾰족하게 도울 일도 아니고...
우리 애들은 어려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골에서 컸습니다. 제가 장가들고 15년가량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니, 애들의 유년기는 맞벌이를 하던 저나 아내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음식 솜씨가 유난히 좋으셨던 어머니께서는 사시사철 집 주변과 동산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식재료로 제철 음식을 장만해서 손주들에게 먹이셨는데, 요즘 막 나기 시작하는 엄나무순 나물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움이 돋아 막 터진 몽글한 엄나무순을 따다가 껍질을 벗기고 다듬어서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건져서 물기를 꼭 짜내면 연하게 살캉거리는 엄나무순이 준비됩니다.
커다란 대접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 쌀밥을 한 공기 쏟아 넣고 엄나무순을 넉넉히 올린 다음, 볶은 참깨를 톡톡 뿌리고, 참기름 한 바퀴 빙글 두른 후 고추장을 한 숟갈 넣고 비벼서 한 입 넣으면 밥알마다 쌉싸래한 엄나무순이 코팅되고, 몇 번 씹지 않아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면 참깨와 참기름이 남긴 고소함이 코끝으로 퍼집니다.
매 봄마다 이런 호사를 누리고 살았으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도 봄마다 엄나무순을 찾고, 그 역할을 저와 아내가 대신하는 신세입니다.
달래, 냉이, 민들레가 시간적으로는 봄나물의 맨 앞에 있지만 두릅과 엄나무, 옻나무순이 나오고 마침내 참죽나무순마저 한 뼘씩 뻗기 시작하면 거들떠보지도 않게 됩니다. 식성이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요. 거기에 대물림까지 되었으니 바쁜 와중에 더 바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사서 고생일까요?
마당가엔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앵두는 벌써 흐드러진 가운데 목단과 작약도 새순을 뻗고 있습니다. 밭에는 감자순이 올라오고 쌈 채소들도 잎이 손바닥 반만큼은 컸으니 조만간 마당에서 숯불이라도 피우고 고기라도 구워야 할까 봅니다. 애들을 불러 모아 봄놀이를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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