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을 때만 소리가 나.”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에 나오는 이 대사는, 나에게는 영화 속 대사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바로 직전 아파트에서 겪었던 층간소음으로, 실제 내가 가족들에게 했던 말이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바닥을 끄는 소리는 낮과 밤, 심지어 새벽까지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집 안 어디에 있어도 그 소리는 따라붙었다.
기묘했던 건 그 소리가 마치 내 움직임을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안방에서 부엌으로 걸어가면 그 동선을 따라 윗집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편함은 커졌다. 혼자 있을 때 유독 심했다 보니 가족들조차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말했고, 그 말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는 원래 소리에 민감한 편이 아니다. 큰 소리에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미묘한 감정도 대충 넘기며 살아왔다. ‘예민함’과는 거리가 먼 ‘둔함’편에 속했다. 그런 내가 층간소음 때문에 잠을 설치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집은 쉬는 곳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다.
층간소음에 지친 마음은 결국 이사 이야기로 이어졌다. 남편에게 불편함을 몇 번이고 이야기했지만, “알겠다”는 말만 반복될 뿐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야속한 마음에 나 혼자서라도,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혔고, 제주도 작은 섬에서 살아보는 상상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생활을 통째로 바꾸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 컸다.
그제야 남편도 현실적인 해법을 가져왔다. “당장 땅을 사서 집을 짓기보다는, 우선 단독주택 전세를 살아 보자”는 제안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직장이 있고, 한창 돈이 들어가는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직장을 정리하고 전원 생활을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장은 유지하되, 생활 방식만 바꿀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서울과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단독주택이 밀집해 있고,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가 갖춰진 곳.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마다 지도를 펴 놓고 여러 지역을 둘러보는 ‘임장’이 이어졌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마음을 빼앗긴 곳이 바로 김포 운양동이다. 운양동은 김포 한강신도시 안에 자리 잡은 동네로, 2000년대 후반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고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입주가 진행된 곳이다. 한강과 가깝고 공원과 녹지가 많아 전반적으로 주거환경이 쾌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가 처음 운양동을 찾았을 때, 아파트 단지 사이로 공원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한강공원을 벗 삼아 달리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네모 반듯하게 구획된 찻길을 따라 차를 몰고 다니는 일조차 신도시 특유의 질서와 여유를 느끼게 해줬다.
우리가 집을 구한 곳은 운양동에서도 모담산 자락, 철새 군락지 근처다. 이 일대는 산과 하천이 가까워 고도 제한이 있다 보니 고층 건물이 많지 않다. 덕분에 집 앞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이 넓게 보인다. 밤이 되면 상가 불빛이 조금만 꺼져도 어둠이 금세 내려앉는다. 예전 집에서는 위층 발소리를 들으며 뒤척였다면, 이곳에서는 밤 공기가 갑자기 조용해져서 오히려 낯설 정도다.
물론 운양동이 교통 문제로 종종 거론되는 지역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김포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는 이사 결정 전부터 귀에 익었다. 실제로 이곳에 들어온 뒤에도 “차 막히지 않느냐”, “김포골드라인은 괜찮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층간소음을 피해 선택한 이 동네가 또 다른 고충을 안겨 주는 건 아닐지 걱정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운양동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단독주택이 밀집한 주거지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생활을 누리면서도, 서울 도심과 완전히 끊기지 않는 거리. 내가 원하는 건 완벽한 전원의 고립이 아니라, ‘지나치게 시끄러운 일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삶이었다. 운양동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타협점처럼 느껴졌다.
이제 막 운양동에 이사 온 사람으로서, 교통과 출퇴근 이야기, 실제 생활 인프라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차근차근 풀어 보려 한다. 우리의 출근 시간이 정말 단축되었는지, 김포골드라인과 버스 노선은 어떤지, ‘운양동 초짜’의 눈으로 경험한 이야기를 2화에서 이어 가겠다. 김포 토박이 분들이 보기에 다소 엉성한 대목이 있더라도, 새로 이사 온 사람의 첫인사라고 너그럽게 받아 주셨으면 한다.
“김포 초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